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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시의원이 국사봉에 대해 묻기에…  
정병상 |    작성일 : 2024-05-08

J 시의원이 국사봉에 대해 묻기에…


국사봉 한자는 國師峰(국사봉)이 아니라 國事峰(국사봉)이다


[기고] 김태호(계룡서예학원 원장)

 


               김태호(계룡서예학원 원장)


어김없이 오늘도 산책을 하고 있는데, J시의원이 달려와 차 한 잔 하자고 한다. 이유인 즉 국사봉의 한자(漢字)가 國師峰인지 國事峰인가에 대해 연원(淵源)을 묻는 것이다.

소견은 좁지만 J 의원의 질문을 계기로 계룡산 주변의 지명을 통해 어떤 목적으로 선인들은 명명(命名)하였는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경천(敬天)은 불과 50년 전 만 해도 신도안 사람들이 숫용추와 서문다리를 지나 산을 넘어 장작과 엿을 지게에 져다가 팔고 양식과 엿의 재료인 조와 수수 및 생필품으로 바꿔서 넘어온 지역이다. 

이만큼 계룡시(당시 신도안)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는 계룡시 관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려고 하면 한계가 있어 계룡시의 정체성을 찾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계룡면 경천(敬天)이든 계룡시 경천(敬天)이든 계룡산의 관점에서는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이는 마치 숲에서 나와야 숲을 볼 수 있는 이치와 같으니 계룡산 주변 지명으로 계룡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이유이다.

계룡산을 부르기를 한말(韓末)에는 “공주의 계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신도안에 사람이 몰리면서 ”논산의 계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가 대전 유성의 별봉에 대운이 온다하여 ”대전의 계룡산“이라 부르며 자임(自任)하던 적이 있었다.

이제 돌고 도는 변화의 이치에 따라 계룡산의 주인 노릇을 하라고 계룡시(鷄龍市)를 여니 계룡시가 나서서 계룡산의 적자임을 자임(自任)할 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계룡산 주변의 전해지는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계룡시의 정체성을 재고(再考)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계룡산 주변의 지명으로는 연산(連山), 대전(大田), 유성(儒城), 노성(魯城), 민목재(民牧峙), 경천(敬天)등이 있으며 각각 의미하는 바가 크므로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 보자.

연산(連山)은 하(夏)나라 시절에 역(易)을 부르던 다른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역(易)은 변화이며 바뀌지 않으면 역(易)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침잠(沈潛)의 시간을 보내던 연산(連山)은 한말(韓末)에 연산에서 출생하신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에 의해 후천(後天)의 세계관을 피력하심으로 그 후천(後天)이 다시 시대에 따라 도를 행하시어 선천(先天)됨을 증명하시었다.(隨時變易以從道)

또한 일부 선생은 음수자사원(飮水者思源)의 심정으로 향한리 국사봉 아래에서 도(道)의 맛을 보셨다. 

즉 물을 마시는 사람은 이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일부 선생은 양촌(陽村)에서 향한리 국사봉으로 오셔서 도(道)의 근원에 잠기신 것이다.

비단 일부(一夫) 선생 뿐 만이 아니다. 문원공(文元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선생은 연산 임리(林里)에서 후학들과 강학하시며 아호를 사계(沙溪)라 하셨는데, 이 사계(沙溪)의 어원은 국사봉 골짜기 물이 광석면 합한(合汗)을 지나 연산 임리(林里)를 지나는 연산천(連山川)에서 왔다.

임리(林里)의 연산천은 당시에는 수군을 두었을 정도로 매우 수량(水量)이 많은 하천이어서 수천 명의 개태사 스님들이 밥하고 빨래도 했었다.

고리말(高麗末)에는 국가의 혼란을 틈타 왜구들이 금강지류의 수로를 타고 고리(高麗)의 국가 사찰인 개태사(開泰寺)를 도적질했다고 전하니 수량(水量)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사료라고 하겠다.

이처럼 아름다운 연산천의 반짝이는 금빛 모래를 사계(모래내)라고 불렀는데 이 사계는 매우 경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우뚝한 계룡산과 함께 절경(絶景)을 이루어 김장생 선생은 이곳에 터를 잡고 짐보따리 풀기에 적지라 여기시고 당신의 아호를 사계(沙溪)로 정하시었을 것이다.

선생은 이곳에 양성당(養性堂)을 짓고 강학과 함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셨으니 사계 선생이 계룡(당시는 연산현)사랑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옛말을 몸소 실천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사계(沙溪)라는 두 글자가 국사봉 장군암의 옹달샘과 관계가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사계 선생 또한 노년을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심정으로 지금의 두계(豆溪) 사계고택(沙溪古宅)에서 머무시어 젊었을 때는 연산천의 사계(沙溪)와 황혼에는 대전 갑천(甲川)의 지류인 두계천에서 순류(順流)와 역류(逆流)의 도미(道味)를 즐기셨을 것이다.

지금은 일제에 의해 호남선이 지나가는 바람에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을 했지만, 예전에는 강변에 정자를 세워 글을 읽고 활도 쏘던 곳으로 전국의 시인(詩人)과 묵객(墨客)들을 계룡산을 위해 노래와 휘호를 아끼지 않은 장소가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들이 노성산과 천황봉과 연천봉을 바라보며 어떠한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였는지 좀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연천봉(連天峰)은 풍수지리에서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형상으로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白頭山)의 적장자(嫡長子)임을 자임(自任)하며 오늘도 백두(白頭)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봉의 이름을 천황봉(天皇峯)이라 부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앞으로 오는 세상은 우리 민족이 주도적으로 맞이할 것을 약속한 터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날까지도 눈 밝고 귀 밝은 세상의 선비들이 계룡산을 위해 효도(孝道)를 다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계룡산은 우리 민족의 핵심 사상인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고 말씀하신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서문다리 넘어 경천(敬天)이라는 지명과 후천시대에는 성인(聖人)이 나시어 백성을 잘 인도한다는 의미의 민목(民牧)의 사상을 베풀어 “민목재(民牧峙)”라는 지명을 당당하게 놓은 것이다. 

이는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치(價値)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 사상을 국시로 삼음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끌고 나갈 원동력으로 그 가치가 차고 넘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계룡시는 한류(韓流)의 원조(元祖)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思想)의 완성형인 계룡산(鷄龍山)에 안겨 이제 막 기지개를 켜며 시대를 따라 국사봉(國師峰)이네 국사봉(國事峰)이네 하며 시대가 원하는 대로 민의(民意)를 모으며 발전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 J 시의원에게 드리는 답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국사봉(國事峰)이 맞다면 계룡의 뜻인 우리 겨레의 천제(天帝之子,천황, 출전:광개토대완비)가 경천(敬天)하고 애인(愛人)하는 장소라면 국사봉(國事峰)이 아닐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이 말을 하고 나니 벌써 다음 세상이 열린 기분이다.

아니다. 

지금 다음 세상이 온 것을 아는 사람은 있는지 없겠는가?

민의(民意)가 모아지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옛 글에 이르길 인중승천(人衆勝天)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는 말로 사람 개개인의 가치가 평등하니 개개인의 뜻만 같으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무엇이든 이룬다는 말이다.

계룡산의 계룡(鷄龍)은 말 그대로 겨레의 천제(天帝)가 홍익인간 사상을 실현시킬 터전이라는 것을 지명(地名)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의 완성체인 경천(敬天)과 민목(民牧)의 지명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을 뿌리내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실현을 위한 약속의 터전임을 한번 더 강조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유교의 사상으로 계룡을 완성된 모습을 그렸는데 유성(儒城)이라는 지명(地名)은 지명대로 나라의 기둥인 간성(干城)이 되는 곳이다. 지금 유성에서는 수천 명의 박사와 ADD 및 자운대 등에 나라의 역군들이 모였으니 유성(儒城)이라고 명명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민목재 뒤의 봉우리 이름은 황적봉(黃積峰)으로 국고(國庫)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국고를 지키기 위해 자연사박물관 뒤의 봉우리를 장군봉(將軍峰)이라 부름이 마땅하지 않은가?

또한 조선 정조대왕의 이름이 이산(李祘)으로 당초에는 노성산(魯城山)을 이성현(尼城縣)의 이산(尼山)이라고 불렀었는데 정조의 이름과 발음(發音)이 같았다.

때문에 공자가 태어난 이구산(尼丘山)이 노(魯)나라에 속하므로 노성현(魯城縣)으로 바꾸고 공자의 이름 공구(孔丘)도 또한 노(魯)나라 이구산(尼丘山)에서 따 왔으므로 공자를 추존한 조선(朝鮮)은 이성현(尼城縣)을 노성현(魯城縣)으로 바꾸어 유교이상국(儒敎理想國)의 염원을 담음으로 계룡을 대변(代辨)하려 시도하였던 것이다.

대전(大田)은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보면 잠룡, 현룡, 비룡, 항룡이 재주를 부리며 노는 터전으로 계룡이 행하는 곳을 의미하며 바둑판의 화점처럼 중요한 꼭지 변환점을 의미하니 즉 대성인(大聖人)의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현장을 말한다. 

지금 하늘에는 봄비가 내린다.

사계 선생과 일부 선생도 이 비를 느끼며 향한리 국사봉 오솔길을 오르기도 하고, 두계천에서 봄꽃을 완상하였으리다. 

우리도 ‘일부선생같이‘ ’사계선생처럼‘ 오솔길과 천변을 걸으며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지 않은가? 계룡세상(鷄龍世上)이 도래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즐거운 하루다.

위의 글이 J 시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세대를 위해 계룡시민과 함께 한류를 유지하며 다가올 세상에 주인으로 당당한 역할을 위해 민의(民意)를 모으며, 할아버지 말씀하신 홍익인간의 실현 장소로 계룡시 아니면 안 된다고 자임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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