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쇠 방망이, 한 손에 정치 방망이
고문 변평섭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한 번은 일을 저질러 아버지에게 불려갔는데 화가 나신 아버지는 내 종아리를 때릴 회초리를 찾았다. 회초리는 아버지 손 가까이 있었는데도 여기저기 찾는 척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눈짓으로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하면 아버지는 자식을 때리고 싶지 않아 회초리를 찾는 척하시면서 도망갈 기회를 주신 것이다.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 ‘회초리 찾기’였다. 지난번 코로나가 엄중한 시기에 벌어진 민노총의 8,000명 대규모 집회를 대하는 정부, 특히 경찰의 자세를 보면 옆에 회초리를 두고도 그걸 찾는 제스처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김부겸 국무총리는 질병관리청장을 대동하고 민노총을 방문했으나 민노총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수모를 겪었다. 한 나라 국무총리의 체통이 무색했다. 국민들은 TV를 통해 이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쯤 되면 정부의 강경 입장이 나오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민노총은 여의도에서 집회 장소를 종로로 옮겨 기습 시위를 벌여 이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고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런데 과연 경찰이 여의도에서 종로로 시위 장소를 옮기는 것을 몰랐을까? 8,000명이나 되는 대규모 집단이 멀리 부산이나 광주도 아닌 같은 서울권에서 움직이는데 경찰의 정보력이 그걸 놓쳤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거 유신정권 시절, 지금의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KCIA)가 국가의 모든 정보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때도 경찰의 정보력이 제일 빠르고 정확했다고 했다. 심지어 모든 선거의 결과까지 경찰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찰의 정보력이 8,000명 대규모 집단의 기습 시위를 몰랐다는 것은 ‘아버지의 회초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총리와 질병관리청장이 민노총 설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처럼 보여줬고, 경찰은 엉뚱한 곳이 됐지만 차벽을 세우고 경비를 철저하게 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됐으며, 민노총은 집회를 성공리에 마쳤다는 성과를 안겨준 셈이니 결과적으로 짜고 친 ‘고스톱’처럼 되었다. 그러니까 지난주 정부와 원주시민의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집회를 강행한 것 아닐까? 국민만 딱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다 마침내 지난주 민노총 집회참가자 3명이 확진자로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 정부의 방역, 소위 ‘K-방역’이라는 실상을 보여준 매우 가슴 아픈 현상이 또 한 번 나타난 것이다. 야당이 ‘정치 방역’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더더욱 지난해 광복절 보수단체 집회를 ‘살인자’라 외치며 참가자 1만 명 전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까지 조회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보이고, 또 지난 14~15일 자영업자들의 차량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과 비교하면 이번 민노총 시위를 다루는 당국의 태도는 너무나 균형을 잃은 공권력 행사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떻게 이렇게 하고서 과정은 공평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정부라 할 것인가. 경찰과 방역 당국은 뒤늦게 수사를 하고 민노총 집회참가자 전원에게 진단검사를 받게 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백신 수급도 그런 식으로 늑장 대처하다가 오늘의 사태를 맞이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제발 땀에 젖은 방역복을 입고 고생하는 의료진, 죄없이 거리두기 강화로 눈물 흘리는 자영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한 손에 쇠몽둥이, 한 손에 솜몽둥이’라든지 ‘정치 방역’이라든지 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