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바지’  

   고문  변평섭

‘내가 장관일 때는 거절하던 여자들도 대통령이 되니까 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더라’ 바람둥이로 소문난 지스카르 데스뎅 전 프랑스 대통령의 고백이다.

지스카르 데스뎅뿐 아니다. 미테랑 대통령은 정부에게서 딸까지 낳았고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보다 정부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언론에서는 그의 숨겨둔 딸이나 밤의 행각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사생활’이라는 것으로 다루지 않았다.

프랑스와 올랑드 대통령도 복잡한 여성편력을 갖고 있다. 정식 부인도 아니면서 30년을 동거했고 4명의 자녀까지 두었었다. 특히 동거녀 신분임에도 엘리제궁에서 살았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쯤 되면 언론은 벌집 쑤시듯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언론은 침묵했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여직원과의 스캔들로 탄핵에까지 이르고 유력 대권 후보들이 여성 문제로 잇달아 낙마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이제는 공직자의 사생활도 공적 영역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현 마크롱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25세 연상의 은사와 결혼하고서도 한눈팔지 않고 충실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해 모처럼 ‘대통령 성윤리’(性倫理)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직자의 성윤리를 공적 영역으로 중시하는 미국민의 정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대선정국이 뜨거워지면서 TV토론 때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바지를 벗을까요?’가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이 지사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모 여배우와의 불편한 관계를 경쟁 후보가 다시 물고 늘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정말 어린 청소년들이나 안방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시청을 하기는 매우 민망한 장면이었다. 과거 프랑스 대통령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질문과 대답은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영·미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공직자들이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솔직히 고백하고 가족과 사회에 용서를 구하는 모습도 보였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2013년 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유력시되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중앙정보국) 국장의 경우다. 그는 이라크 주둔 사령관 등을 거치며 미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았으나 불륜 문제가 터지자 CIA 국장을 사임하면서 공식 연설을 통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사과하고 또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스캔들뿐 아니라 많은 유력 공직자들이 불륜을 저질렀을 때 언론은 가차 없이 파헤쳤고 당사자는 솔직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다. 전통적인 유교문화에 뿌리가 깊고, 미국식 정치문화에 익숙해 있어 성 윤리에 대해 엄격할 것 같으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경우에 보듯 공직자의 성 윤리 인지도는 낙제점이다.

그리고 ‘바지를 벗어볼까요’하고 낯뜨거운 장면이나 연출하고 솔직한 사과나 해명도 없다. 사실을 파고드는 노력도 없이 뜬 소문에만 의존하는 반대파의 자세도 문제다.

 이제 우리나라도 공직자의 사생활 역시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