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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호 제독 역사이야기 (암살자 염동진)

승인 2019-04-09 20:56:59 정병상 |    

*암살자 염동진 이야기(연재-12)

 

 염동진 과 백의사(白衣社)

  


대동단(大同團)으로서 북한의 소련군정하에서는 더 이상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동단에 의해 현준혁이 암살되고(1945) 뒤이어 김일성 암살이(1945) 실패하자 검거 선풍이 몰아쳤다.  

목사, 신부,승려,교사 등 우익 인사들 대략 3만 여명이 검거 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많은 우익 인사들은 야음을 이용 남으로 남으로 탈출하기 시작하였다.  염동진도 현준혁 암살 후 구속되었으나 그의 처 최성율의 활약으로 풀려나자 즉시 월남하였다. 먼저 월남한 염동진은 서울에 대동단 조직을 재편성하여 평양을 오가며 활동할 계획을 세웠다. 

   


[염동진의 아내 최성율은 일본 나라(奈羅)고등사범학교를 나온 재원(才媛)으로  서문여고 교사 였다] 

  

먼저 월남하였던 염동진은 정황도 살필겸 다시 월북하여 평양 잠입을 시도하였다. 그의 처 최성율은 남편인 염동진을 우선 탈출시키고 평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염동진은 평양으로 잠행(潛行) 하는중 조만식 선생이 실각하고 김일성이 전권을 장악한 조짐을 파악하였다. 우선 그의 선린상업학교 동문이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사리원에 들르기로 했다. 이것저것 돌아가는 정황을 상세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리원 은행의 내부 구조와 실태를 면밀히 파악했다.

 

지점장 말에 의하면 요즘 들어 소련군 병사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 군표(軍票:군인만 사용하는 화폐)를 가지고 와 현금으로 강탈(强奪)해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차피 소련 군정의 손에 넘어갈 돈이라면 강도 짓을 해서라도 은행을 털어 공작 자금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같이 동행하던 백관옥 과 선우봉에게 그날 저녁 사리원 은행을 털 것을 지시 하였다.  평양에 잡입한 염동진은 잠복하고 있는 대동단 단원들을 은밀히 만나 서울로 조직을 옴겨 활동할 계획을 설명하고 남하(南下) 할 것을 권유했다. 일부는 동의하였으나 많은 단원은 평양에 잔류하여 활동할 것을 고집하였다. 대부분이 연고 가족들 때문이었다. 

 

결국 이렇게 마련된 돈으로 서울로 돌아온 염동진은 아지트를 마련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마련한 아지트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한 궁정정 안가 터 였다.  마련된 궁정동 아지트는 정원이 넓고 나무도 많은 일본식 적산가옥(積算家屋)으로 공간도 충분하였다.  비밀공작 활동하기에 안성마춤 이었다.

  


염동진의 목숨을 건 평양 잠행 행보(行步)를 마치고 돌아오자 서울에서는 金斗漢의 대형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협심과 조직을 위한 명분이라면 앞뒤 안가리고 행동부터 나서는 것이 의리(義理) 사나이들의 행동강령 이었다. 김두한의 대형 사고 내용인즉 조선총독부가 급히 물러가면서 전매청 창고에 두고 간 다량의 아편을 박헌영의 공산당들이 탈취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김두한의 휘하 조직들이 미리 빼 돌렸다는 것이었다.

  

美 군정하에서 발각되면 사형을 면키 어려운 중형(重刑) 감 이다. 물건은 갑부 오동진의 창고에 보관되었으며, 경찰에 불려간 조직원들은 주먹 세계에서 통하는 오리발 내밀기와 떼쓰기로 횡포를 부려 위기를 모면하였다. 

  

천만다행인 것은 물증이 없었다. 염동진은 사건 수습차원에서 신속히 물건을 중국으로 빼돌려 현금처리 하기로 하였다. 

이 자금은 후일 남로당 박헌영이 주도하는 "전국 철도파업" ,"대구폭동" 등 공산당의 사보타쥬에 강력 대응하는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마약 탈취에 실패한 박헌영은 소련으로부터 지원된 공작 자금이 턱 없이 부족하자 "정판사 위조지폐 발행"으로 충당하려 하였다. 그러나 위조지폐를 발행한 박낙종의 정판사(精版社) 직원들이 일부를 빼돌려 기생집에서 여러차례 주연(酒宴)을 즐기다가 수상히 여긴 주인의 신고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수도청장 장택상은 남로당 당수 박헌영에 대한 긴급 체포령을 내리고 그가 운영하던 해방일보 신문을 폐간 조치하였다. 다급한 나머지 박헌영은 시체로 위장하여 포천을 경유 황급히 북한으로 월북하였다. 1946년 가을의 일 이었다.

  

이때 박헌영은 내연(세 번째)의 관계에 있던 처자식을 그대로 두고 북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때의 사생아는 불교에 입문, 오늘날에도 버젓히 생존해 아비의 업보와 위업(?)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때 현 서울시장 박원순과 사상적 동지로서 모 민족연구소를 설립하고 보안법 철폐,민족 민주주의,역사바로잡기(?) 등등 친북 성향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산,사회주의자들의 평상 생활이라는 것이 저항적이고 은둔과 음습한 생활을 하는지라 한번 권력을 잡게되면 여성편력 혹은 권력과 금전에 대한 탐욕에 매우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오늘날 종북,좌파적 성향의 많은 인사들이 관직을 이용 국가공금의 탕진,갈라 먹기식 배분, 의도적 선심성 수혜 베풀기 등등 그 폐해는 저들만의 공의요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다.] 

 

해방정국, 미 군정시절에는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치안 질서를 위해서는 오로지 수도청장 장택상(張澤相)의 경찰력 뿐 이었다. 군대도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고 도저히 박헌영의 남로당 지하 조직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오로지 염동진과 김두한의 사조직 외에는.... 

 

그래서 내면적으로는 수도청장 장택상도 염동진과 김두한의 비밀조직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는 해방정국(1945. 8.15-1948. 8. 15), 군정기간 동안 애국애족의 사나이 염동진과 김두한(金斗漢)의 활약과 그들의 공로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박헌영이 주도했던 '전국적인 철도파업'과 '대구폭동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굶어 죽는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했을 것이다. 또한 위조지폐를 남발하여 인플레를 유발하고 경제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조기에 수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차 공세 (1946년:철도파업,대구폭동)에 실패한 박헌영은 김일성과 상의하여 1948년 5월10일 (총선거)을 전후한 제 2차 공세 "제주4. 3폭동" 과 "여순반란 사건"을 획책하게 된다. 이런 일연의 사건으로 남한 국회와 군내부에 남로당 푸락치사건과 반란 세력들이 대거 침투하였고 결국 6. 25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판국에 김원봉 같은 공산(共産)주의나 민주(民主)주의에 관계 없이 개념 없는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를 대한민국의 애국지사 반열에 올린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감상,낭만주의 다. 그렇게도 대한민국에 애국지사가 없다는 말인가 ?



정병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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